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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강 댓글 0건 조회 966회 작성일 20-09-22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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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기행()

 

   티베트는 달라이라마가 라마교의 최고 지도자이자 국가의 수반이다. 1940년 중국인민해방군이 침략하여 시짱 자치구로 통치하기 전까지는 제정일치(祭政一致)의 국가이었다. 우리나라도 부족국가 시대까지는 제정일치의 시대로 제사장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부족을 다스리는 일을 하였다.

   달라이라마는 달라이(大海)와 라마교의 라마(禪僧)를 합친 티베트어로 하늘에 제사 지내는 큰 바다와 같은 승려라는 뜻이라고 한다. 현재는 14대 달라이라마가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로서 티베트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독립투쟁을 벌이다 중국의 감시를 피해 인도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달라이라마는 아기 예수가 태어날 것을 알고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아기 예수를 맞이했다는 것과 같이 포탈라궁에 있는 라마(禪僧)들이 하늘의 계시가 있어 밝은 서기가 비친 곳에서 태어난 아기를 차기 달라이라마로 정하고, 여섯 살이 되면 어린 달라이라마는 부모들과 떨어져 포탈라궁에서 라마들로부터 교육과 수양을 통하여 지도자의 자질을 갖춘다고 한다.

 

   날이 밝자 여장을 꾸리고 달라이라마가 거주하는 포탈라궁으로 갔다. 포탈라궁은 송첸캄포가 포탈라궁을 지었으나 오랜 세월이 흘러 망가져서 1645년 제5대 달라이라마 때 3년에 걸쳐 그곳에 지금의 궁궐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포탈라궁은 제일 낮은 계곡에서 300m나 되는 산 정상에 기단부가 있으며 해발 3,700m가 되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궁전이다. 이 궁전은 궁성, 궁전, 뒷산의 조경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궁성은 남북으로 350m 동서로 400m의 규모로 동쪽, 남쪽, 서쪽에는 3층의 누각이 딸린 성문이 있다. 산 정상 궁성 안에는 백궁, 홍궁, 사원 그리고 광장과 4개의 큰 외성이 있다. 백궁은 달라이라마가 거주하는 궁전으로 6층의 중앙누각이며 대전과 침궁 섭정자와 스승의 방으로 구성되었다. 홍궁은 종교행사와 연구를 위한 장소로 9층의 중앙누각으로 대전, 역대 달라이라마의 영탑을 모신 사당. 일천 개의 방과 일만 개의 작은 사원에 이십만 개의 불상과 벽화, 각종 불전, 보석 등이 있다. 사원은 산 정상 서쪽에 있으며 뒤쪽에는 룽왕탄이란 큰 호수가 있다. 이 호수의 야경이 일품이다. 깜깜한 밤하늘에 주먹만 한 밝은 별이 손을 뻗으면 곧 따올 수 있을 것만 같고, 희고 붉고 금 빛나는 포탈라궁은 밝게 비추는 조명에 더욱 황홀하다. 티베트인들의 역사와 부처님을 의지하며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아온 티베트인들의 삶이 포탈라궁에 담겨있어 더욱 신비롭고 아름답게 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룽왕탄 호수에 비친 황홀한 포탈라궁의 모습이다. 호수에 비친 포탈라궁은 티베트인들의 자주독립 국가를 염원하듯 애수에 젖어 보여 더욱 애잔하게 보였다.

   이 궁전은 1959년 인민해방군이 포격을 가하여 훼손될 뻔했으나 다행히 포격을 멈추어 보전할 수 있었으나 이때 궁 안에 있는 각종 보석, 그림, 불화, 고대 갑옷, 불상 등 십만여 점을 도둑맞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문화재가 임진왜란이나 6·25동란 때 일본에 약탈당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 도난당한 것과 흡사하였다. 그러나 1994년에 조캉사원, 노블랑카, 포탈라궁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노블랑카는 라싸 시내에 있는 달라이라마의 여름 궁전으로 평지에 세워져서 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조경을 했기 때문에 삭막한 티베트에 사는 국민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포탈라궁의 여운을 가슴에 새기며 다음 날은 남쵸 호수를 가기 위하여 아침 일찍 랜드크루즈에 몸을 맡겼다. 차는 오르막길을 힘겹게 달리다 약 두 시간쯤 지나서 해발 5,150m의 라겐라(=고개)에 도착했다. 고도가 높아지자 차에 앉아있어도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리자 고산증세가 나타나 준비해 온 산소통을 터서 코에 대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도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벌기 위하여 현지인들이 희고 검은 야크 두 마리를 이용하여 사진을 찍도록 하고 돈을 요구했다.

   지친 몸을 추스르고 약 한 시간쯤 지나서 남쵸 호수에 도착했다. 남쵸 호수는 티베트인들이 남(nam=하늘)과 쵸(tso=호수)라고 하여 하늘호수라고 한다. 남쵸는 해발 4,718m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염호(鹽湖)로 수만 년 전 바다였던 곳이 바다 밑의 원상태로 지각변동으로 융기되어 소금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이 호수의 크기는 긴 폭은 70km이고 짧은 폭은 30Km이며 호수의 면적은 1,920로 제주도 면적보다 약간 넓다고 한다. 이렇게 큰 호수를 4,000m 이상 높은 곳으로 밀어 올린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에 저절로 머리가 숙이어졌다. 호수 주변으로는 만년설이 쌓인 올망졸망한 산으로 둘러있고 파란 호수와 하얀 구름이 어우러진 호숫가에는 오색의 룽다와 타르초가 펄럭여 신비함을 더했다. 나는 이 호수에 호기심이 생겨 손으로 호숫물을 떠서 맛을 보니 약간 건건한 맛이 있는 것 같았다. 오늘도 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고국을 떠나온 지 벌써 보름이 되어간다. 날씨는 맑고 쾌적하며 잠자리도 크게 불편하지 않으나 중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였다. 아침은 호텔식이라 골고루 섭취하여 에너지를 보충하고 점심은 현지에서 적당히 먹고 저녁은 식당에서 먹거나 집에서 준비해 온 밑반찬으로 저녁을 해결하거나 준비해 온 라면을 끓여 먹었다. 나는 누룽지와 볶은 서리태콩, 끓는 물에 데친 오징어를 간식으로 준비하여 일행과 나누어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하였다.

   오늘은 지금까지 쌓인 피로를 풀 겸 라싸 시내에서 가까운 티베트박물관을 찾기로 하였다. 박물관은 그 지역이나 나라의 역사를 비추는 거울과 같아서 호기심을 가졌다. 티베트는 우리나라의 열두 배나 되는 1,200의 넓은 면적에 우리나라 인구의 1/13밖에 안 되는 377만 명이 사는 곳이다. 티베트의 문화는 어떻게 발전해왔을까 기대를 가지고 박물관에 도착했다. 박물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시대별로 분야별로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실 큰 기대를 갖지 않았으나 내 눈을 의심할 정도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본 만큼 느낀다고 한다. 내가 티베트에 대한 사전 지식이 그리 많지 않고 유물에 대한 설명도 읽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안내자도 아직 설명할 만한 지식이 없어 눈으로만 보고 나올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다.

 

   어느덧 삼 주간의 여정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왔다. 돌아갈 때는 라싸에서 열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 열차는 칭짱철로라고 하는데 중국 서부의 칭하이성 시닝시와 라싸를 연결하는 1,956Km의 긴 철도이다. 이 철로는 1958년에 착공하여 2006년에 완공되어 개통되었으며 북경을 비롯하여 중국의 여러 도시와 연결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발 4,000m에서 5,000m의 높은 곳에 건설하여 공사할 때에도 고산증으로 노동자들이 힘들었으며, 열차 안에도 산소호흡기가 설치되어있다. 이 철도는 티베트의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티베트인의 생활을 편리하게 한다고 했으나 티베트인의 폭동 시 중국인민해방군의 전차부대와 진압병력을 수송하기 위하여 건설되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라싸에서의 마지막 점심을 먹고 역으로 가서 탑승 수속을 마치고 십여 일간 고생을 함께 한 안내자와 작별했다. 우리가 탄 열차는 양쪽에 침대가 3층으로 된 6인실이었다. 출입구 옆으로는 통로가 있고 차창을 통하여 바깥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열차 안에 누워서 지난 여정을 돌이켜보다 피로에 지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덜컹거리는 흔들림과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었다. 벌써 석양이 되었다. 통로로 나가 차창으로 밖을 보니 붉은 노을이 파란 초원과 흰 눈이 쌓인 산을 덮고 있었다. 열차는 높은 산을 오르며 숨이 찬 듯 힘겨워하고 있었다. 밖이 캄캄해지자 안으로 들어와 저녁을 먹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 일행은 이 열차에서 2343시간 동안 숙식을 하며 낮에는 바깥 경치를 구경하고 밤에는 잠을 자며 보냈다.

 

   나는 이 글을 여행을 다녀온 십여 년이 지난 후 지금 쓴다. 그래서 순전히 그때의 감동이 남아있는 대로만 쓰기 때문에 기술한 내용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다녀 본 해외여행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아있어 그때의 잊지 못할 영혼의 추억을 회상하며 이 글을 쓴다. 이후로도 인도의 서북부 카라코람산맥이 있는 라다크 지역, 미국의 로키산맥, 남미의 안데스산맥 등 고대 잉카 문명의 유적지를 가 보았으나 티베트처럼 감명을 받지는 못했다. 티베트는 인간의 욕망이 파괴해 버린 아름다운 자연과 순수한 인간성을 상실하고 허덕이는 지구상에서 지금도 태고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자연의 신비로움과 인간의 순수한 영혼이 살아 숨 쉬는 지역으로 내 가슴 속에 오래도록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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