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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강 댓글 0건 조회 1,024회 작성일 20-12-0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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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普施)

 

   보시(普施)는 태양이 모든 사물의 품성을 따지지 않고 무한한 사랑으로 따사로운 햇볕을 베풀어 주고, 땅은 만물을 그의 넓은 품으로 안아 키워내듯이 불법에서는 자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조건없이 주는 것을 말한다. 중생 구제를 목표로 하는 이타정신(利他精神)의 극치이다.

   보시를 행할 때는 베푸는 자도 받는 자도, 그리고 베푸는 것도 모두가 본질적으로 공()한 것이므로 이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우리나라서는 재시(財施), 법시(法施). 무외시(無畏施)의 삼종시(三從施)를 널리 채택하여 시행하는데 재시는 능력에 따라 재물을 보시하여 기쁨을 주는 것을 말하고, 법시는 진리를 구하는 자에게 불법을 설명하여 수련을 돕는 것이고, 무외시는 사람이 공포에 빠졌을 때 어려움을 대신해 그를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나는 티베트 여행을 하면서 티베트인들이 성심으로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 살면서 몸소 실천하는 신앙심이 정말로 높은 것을 느꼈다. 그들은 죽어서까지 보시를 하는 것을 장례를 치르는 방법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티베트의 장례는 연탑장, 화장, 천장(조장)이나 수장, 매장의 네 가지가 있다고 한다.

   연탑장(蓮塔葬)은 달라이라마가 승하하면 치르는 장례로 시신을 방부 처리하여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 보존하여 연꽃같이 아름답게 꾸민 연탑에 넣어 포탈라궁의 홍궁에 영원히 모시는 장례이다. 포탈라궁에는 지금 열세 명의 달라이라마의 연탑이 신성하게 모셔져 있다.

   다음으로 화장(火葬)은 라마가 돌아가셨을 때 치르는 장례로 우리나라에서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다비식을 하는 것과 같이 화장을 하여 납골당에 모시는 장례이다.

   천장(天葬) 또는 조장(鳥葬)이라고 하는 장례는 일반 서민들이 주로 치르는 장례이다. 그리고 수장(水葬)도 일반 서민들의 장례형태다.

   마지막으로 매장(埋葬)은 죄인이나 병으로 죽은 자를 땅에 묻는 것을 매장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땅에 묻기는 하나 봉분을 만들지 않고 그냥 땅에 묻는다. 죄를 지은 자나 병으로 죽은 자는 그 업보 때문에 시신이라도 보시를 할 수 없으므로 땅속에 묻어 미생물의 먹이가 되어 썩어서 흔적을 남기지 않게 하려고 매장을 한다고 한다.

 

   내가 티베트 여행 중 지금도 뇌리에 남아있는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천장(조장)하는 곳을 가 본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장례를 치를 때 가족이나 친지, 친구 등 많은 사람이 조문하여 돌아가신 분을 애도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그러나 천장은 가족이나 친지 두세 명과 장례를 집전하는 승려 한 사람만 참석한다. 그것은 시신이 수의를 입지 않은 맨몸이므로 타인에게 보이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적절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외국인의 참관은 극히 제한하여 볼 수 없으나 우리 일행은 현지인 안내자의 간곡한 부탁과 사정을 설명하여 간신히 먼발치에서라도 천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라도 천장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하였다.

   천장터는 마을에서 떨어진 그리 높지 않은 명산의 정상에 있었다. 그리고 룽다와 타르초가 어김없이 펄럭이고 천장 터에서 약간 떨어진 바위 위에는 어김없이 날개의 길이가 1m가 넘는 크고 검은 독수리 떼 백여 마리가 모여 있었다. 한편 천장 터에는 칼과 꼬챙이, 망치, 쇠갈고리, , 쇠로 만든 절굿공이, 멍석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가족이 죽으면 삼 일만에 장례를 집전하는 승려에게 길일을 택하여 장례를 치르는데 시신을 두 손과 발을 따로 묶고 자루에 넣어 긴 장대에 매달아 두 사람이 메고 천장 터에 간다고 한다. 운구하는 사람이 마땅히 없으면 시신을 거꾸로 세워 두 발목을 잡아 등에 업고 천장 터로 가기도 한다고 한다. 천장 터에 도착하면 자루에 든 시신을 꺼내어 손발을 풀고 넓적한 바위에 올려놓고 승려가 고천(告天)을 한다. 망자의 신상을 알리고 편안한 안식처로 가기를 소원하며 약 두 시간에 걸려 염불을 한다. 이때 벌써 독수리 떼가 가까이 와서 기다리고 있다.

   고천 의식이 끝나면 시신의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고, 쇠갈고리로 살을 가르고 칼로 자르며, 각종 도구로 독수리가 먹기 좋게 분해하여 독수리에게 보시한다. 독수리가 시신을 뜯어 먹는 시간은 불과 십여 분이면 끝난다. 그리고 머리뼈나 다리뼈 등은 망치로 부수고 쇠 절굿공이로 빻은 후 보릿가루를 섞어 둥글게 뭉쳐 멍석에 널어놓으면 독수리나 작은 새들이 몰려와 쪼아 먹는다. 이런 의식을 진행한 사람을 돔텐이라고 한다.

   수장은 강가에 사는 사람들의 장례로 큰 바위가 있고 물이 소용돌이치는 소()가 형성된 곳에 시신을 넣어 육신은 물고기의 먹이로 보시하고, 영혼은 주위에 있는 높고 큰 바위 위에 그려 놓은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눈을 뜨고 볼 수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지만 티베트인들에게는 신성한 장례의식으로 엄숙하게 치른다. 이런 장례의식은 기원전 7년 왕이 승하하자 하늘에서 무지갯빛 밧줄이 내려와 왕의 시신이 승천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자기의 조상은 하늘에서 내려왔다 다시 하늘로 간다는 인식이 정착되어 높이 나는 독수리에게 시신을 주어 영혼이 하늘나라로 가기를 바라는 것이 가족의 애절한 소원이었다고 한다.

   또 티베트불교의 영향이라는 유래는 둔황 시대에 승려가 죽으면 시신을 매장했는데 건조기후라 시신이 썩지 않고 쓰레기로 남아있으므로 생명 보시가 진정한 부처의 가르침이라 여기던 사람들이 짐승에게 보시했다는 기록이 티베트의 토 듀오라는 고전에 남아있다고 한다.

   천장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돌과 모래만 있는 척박하고 메마른 땅을 파기도 힘들고 매장해도 시신이 쉽게 부패하여 없어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유목 생활을 하는 티베트인은 주거가 일정치 않으므로 묘지를 관리할 수도 없어 이러한 장례문화가 생성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장례문화를 서구 문명의 시각으로 보면 상상할 수 없으며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나 각 나라나 민족마다 서로 다른 자연환경과 역사를 지니고 있어 그에 따른 고유한 문화가 형성되었음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것이 상호주의 원칙에 합당한다고 생각하며 티베트인들의 믿음에 큰 감명을 받았다.

 

   불가(佛家)에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말이 있다. 재물이 없어도 일곱 가지 베풀 것이 있단 말이다. 옛날에 온갖 노력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석가모니를 찾아가 호소를 하였다. “저는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으니 무슨 이유입니까?”라고 물으니 그것은 네가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니라라고 말하자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인데 남에게 줄 것이 있어야 주지 뭘 준단 말입니까?”라고 하니 그렇지않느니라. 아무리 재산이 없더라도 즐 수 있는 일곱 가지는 누구나 다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첫째는 화안시(和顔施)로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것이요 언사시(言辭施)는 말로서 얼마든지 베풀 수 있으니 사랑의 말, 칭찬의 말, 위로의 말, 격려의 말, 양보의 말, 부드러운 말로 베풀며, 심시(心施)는 마음의 문을 열고 따뜻한 마음을 주는 것이다. 안시(眼施)는 호의를 담은 눈으로 사람을 보는 것도 베푸는 것이며 신시(身施)는 몸으로 때우는 것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의 짐을 들어준다거나 일을 돕는 것이다. 좌시(座施)는 때와 정소에 맞게 자리를 내주어 양보하는 것이고 찰시(察施)는 굳이 물어보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알아서 도와주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과 같이 생존경쟁이 치열하여 개인과 개인은 물론 사회 구성원 간, 국가 사이에도 삭막하기 그지없는 현실에서 나 살기도 버거운데 남을 생각하고 베푼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 혼자만 살 수 있을까? 어떻게든 우리는 남과 더불어 살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그렇다면 마음만 있다면 실천할 수 있는 무재칠시를 실천하여 훈훈한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티베트인들은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하여 자연을 자연 그대로 훼손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죽어서까지 보시하며 살아가는 영롱한 영혼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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